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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y 가끔 딴생각 2026. 1. 5.
요하네스 케플러(독일어: Johannes Kepler, 독일어 발음: [joˈhanəs ˈkɛplɐ] ( 듣기), 1571년 12월 27일~1630년 11월 15일)는 독일의 수학자, 천문학자, 점성술사로, 17세기 천문학 혁명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붙은 행성운동법칙으로 유명하며, 후대의 천문학자들은 그의 저작 《신천문학》, 《우주의 조화》, 그리고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개요》를 바탕으로 그 법칙을 성문화하였다. 또한 이 저작들은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하는 데 기초를 제공하였다. 생애 동안 케플러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신학교의 수학 선생,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의 조수, 루돌프 2세·마티아스·페르디난트 2세의 세 황제를 모신 신성 로마 제국의 제국 수학자, 오스트리아 린츠에서의 수학 선생, 발렌슈타인 장군의 점성술사라는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또한 그는 광학 연구 분야의 초석을 닦았으며, 굴절 망원경을 개조하여 성능을 향상시켰으며(케플러식 망원경), 동시대의 인물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망원경을 이용한 발견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데 공헌하였다. 케플러가 살던 시대에는 천문학과 점성술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으나, 천문학(자유 인문의 범위 내에 있는 수학의 한 가지)과 물리학(자연 철학의 한 가지) 사이에는 확고한 경계가 있었다. 그는 신이 ‘이성의 자연적인 빛’을 통해 알 수 있는 지적 계획에 따라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념에 차 있었으며, 이러한 종교적 신념에 의거하여 자신의 저술 속에 종교적 논쟁과 과학적 추론을 융합시켰다[1]. 케플러는 천문학을 보편적 수리물리학의 한 갈래로 인식함으로써 고대의 물리학적 우주론의 전통을 바꾸었고, 자신의 새로운 천문학을 이른바 "천체 물리학"[2],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으로의 여행"[3],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에 관하여》의 보충"[4]이라고 묘사했다.[5] 어린 시절 바일데어슈타트의 케플러 생가. 케플러는 1571년 12월 27일, 바일데어슈타트의 제국자유도시(현재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슈투트가르트에 속하고 슈튜트가르트 중심부에서 30km 서쪽으로 떨어져 있는 동네)에서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났다. 케플러 본인이 어른이 되고 나서 계산한 바에 따르면 부모가 결혼한 다음 날 오전 4시 47분에 자신이 잉태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 제발트는 그곳 읍의 장이었지만 케플러가 태어날 즈음에는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하인리히는 보수가 불확실한 용병 일로 돈을 벌었고 케플러가 다섯 살 때 집을 나가버렸는데 80년 전쟁 당시 네덜란드 전선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관집 딸이었던 어머니 카탈리나 굴덴만은 치료사이자 약재상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나중에 마녀로 몰리게 된다. 이르게 태어난 케플러는 병약하지만 영리한 아이였고 외할아버지의 여관에 묵는 사람들을 굉장한 수학적 재능으로 놀라게 하곤 했다[6]. 케플러가 여섯 살 때 목격한 1577년 대혜성. 케플러는 여섯 살 때 1577년 대혜성을 목격했으며 후에 그 일을 《여섯 살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에서 "나는 1577년의 혜성에 대해 많이 들었고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보기 위해 나를 데리고 높은 장소로 올라가셨다"라고 회고했다.[7] 10살 때 그는 또다른 천문학 현상인 1580년 월식을 관찰하였고 후에 월식을 보기 위해 “밖으로 불려가서” 달이 “약간 붉은 색이 된 것”을 보았다고 회고했다[8].